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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d-day
이 날이 오긴 하는구나.
전날까지 우당탕탕 짐을 싸고 출발하기 직전 아침이 되어서야 랩탑 반납을 위해 백업을 시전하는 나.
이 버릇은 평생 못 고친다.
분주한 것 같으면서도 마지막 집밥까지 챙겨 먹을 수 있는 은근한 여유가 있었던 아침이었다.
반찬은 열기 생선구이와 김, 계란후라이.
엘베 없는 5층 집에서 캐리어 두 개를 하나씩 일층으로 날랐고 엄마에게 1층으로 이사 가자고 이야기했다.
또 이 짓을 하게 되거든 그냥 짐을 가지고 내려가서 캐리어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나중에서야 든다.
KTX 역으로 가는 길 동네 세탁소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지연이에게 주지 못했던 귤 핀을 우체통에 넣어뒀다.
역에 도착해 엄마와 라떼를 한 잔 나눠 마시며 기차를 기다렸다.
엄마의 눈물과 그 때의 햇살이 아직도 아련하다.
솜님이 알려준 덕분에 온라인 체크인은 미리 해두었고 두번째 비행기에선 비상구 자리도 차지할 수 있었다.
오후 네시 서울역에 도착해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자정까지 남는 게 시간이었기에 일반열차를 탔는데 퇴근시간을 감안하지 못했지만 심하게 붐비진 않았다.
기내식까지 기다리고 싶었지만 허기를 참지 못하고 씨제이 푸드월드에서 나주곰탕을 한그릇 조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작년 호캉스 가던 날 아이들과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혼밥을 하게 됐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어찌나 생각나던지. 공간은 시간을 되돌린다.
아무튼 후드월드 곰탕은 거르세요 다들.
빨리 수하물을 맡기고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거의 8시가 넘어서야 체크인이 시작되었다.
짐의 총 무게는 37.5 kg
청구 가능한 이상의 초과요금이 나올까 조마조마했지만 2.5에 대한 요금도 부과되지 않아 수월하게 짐을 맡겼다.
설 연휴 전이고 늦은 시간이라 검색대 통과에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 이상의 여유가 있었기에.. 게이트는 무난히 통과.
그리고 조금 지나서 드디어 만나게 된 나의 동료들. 진과 솜.
오랜 재택근무로 인해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진 세 명의 첫 만남이었다.
여기 오기까지 정신 없었던 각자의 시간들을 이야기했고 낯익은 솜님의 백팩을 발견했다.
로우로우는 우리한테 선물줘야 한다.. 깔별로 홍보하고 다녔어요 우리.
비행기 좌석은 꽤나 편안했고 생각보다 기내식이 빨리 나와 행복했다.
두끼라 두 배의 행복이.
한국 출발이라 그런지 밥이 있는 갈비찜 도시락도 있었고 종류가 다양했다.
에그 어쩌고만 듣고 선택한 두번째 메뉴는 이녕이가 나중에 사진보고 알려줬는데 프리타타 란다.
곁들여서 나오는 빵도 다 맛있었고.. 옆 사람이 시킨 와플도 한 입 먹어보고 싶었는데
조금 더 글로벌화 되면 용기내 봐야지.
먹고 자고 일어나보니 도착한 도하.
경유는 처음인데 2시간 30분의 시간이 있어 여유있게 공항을 둘러봤다.
동미가 알려준 곰도 볼 수 있었는데 저게 곰인가 싶기도 하고 살짝 잔인했다.
어디든 있는 스벅과 카페 메뉴 가격보기.
7 카타르 리얄이 약 2달러 라는데 샌드위치 하나에 약 만원 정도 넘은듯.
혼자였다면 두리번 거리다 끝났을 환승 길을 두 분 덕에 길 잃지 않고 안전히 지났다.
어디든 안방처럼 잘 앉아있는 진님. 어댑터 하나로 항해 여행 중인 브라질리언들도 만났단다.
밝은 시간이라 하늘 구경 좀 해보려 창가를 선택했는데 창문은 거의 뒤통수에 위치했다.
난생 처음 앉아 본 비상구 엑스트라 레그 룸.. 앞으로 절대 못 잃어
햇살이 짱짱해 영화를 제대로 봐볼까 싶어 리스트를 자세히 뒤졌다.
해리포터 전편과 리턴 투 호그와트는 정말 감동이었고..
그나마 아는 미드 굿닥터와 최근에 가장 재밌게 본 세븐틴 어게인이 있어 너무나 반가웠다.
국제선은 대한항공밖에 타보지 못했었는데, 영화는 카타르 압승
우주 시점 현위치와 한반도.
Pohang은 안찍힌다.
당이 차오르지만 끝까지 먹는다.
경유 포함 약 20시간의 비행.
어떤 생산적인 정신활동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잘 간다.
비행기가 빠른건지 내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건지
한 30시간은 탈 수 있을 것 같다.
감사감사하게도 안전한 비행이 끝나고 정말 드디어 진짜 최종 더블린에 도착!!
방수 자켓이 머쓱하게 너무나 화창한 날씨였다.
워크 퍼밋으로 순조롭게 입국 심사를 마쳤고 짐도 빠르게 찾아 더블린 땅을 밟았다.
우버 탑승 장소가 별도로 있어 앱으로 예약을 하는 데 조금 애를 먹었으나
친절한 기사 폴 덕분에 짐도 편히 싣고 호텔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오른쪽 운전석도 예쁜 주택들도 마라탕 집도
모두 신기하게 두리번 거리며 더블린을 눈에 담아보려 했다.
이틀 동안 묵을 숙소는 Radisson Blu Royal Hotel.
조식 뽕 뽑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