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하기 - 살 곳은 없어도 먹을 곳은 많다
daft, rent ie, etc...
여러 사이트를 통해 괜찮아 보이는 매물이 보이는 대로 수십 통의 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장 없이 며칠을 흘려보내던 중 드디어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 진님에게도 전달된 한 통의 뷰잉 메일까지.
답장만으로도 이미 계약된 것 마냥
희망회로를 돌리는 우리였다 🥹
할 일이 두 건이나 생기다니.
두 집의 위치를 파악해 회사와의 거리, 교통편, 자전거 통근 시간 등등
검색으로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정리했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오전 11시 첫 집 방문.
Belmayne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집이었다.
숙소에서 버스로 약 40분은 넘게 걸린 것 같은데
더블린에 와서 가장 장기간 버스를 타야 했기에 체감상 조금 먼 곳처럼 느껴졌지만
신촌-분당, 신촌-역삼 출퇴근 짬바로 이 정도는 무난한 수준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동네는 한적해 보였으나 한참 공사 중이라 뷰와 소음이 살짝 신경 쓰였다.
주소만으로 집을 찾느라 두리번 하던 중 mehyeong~?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메일에 답장을 주신 Clara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중개인이 아닌 실제 집주인이셨는데
너무너무 밝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셔서
편안하게 집을 둘러볼 수 있었다.
살면서 처음 본 외국의 2층 주택.
방 세 개, 키친, 거실이 따로 있었는데
정말 크고.. 예쁘고.. 깨끗하고
이런데 언제 살아보나 하는 생각이 드는 집이었다.
직접 거주는 안 하신다는데, 관리가 너무 잘 되어 있었고 심지어 따뜻했다 🥺
입김이 나오는 곳도 있다고 해서 죄금 걱정했지만
그 이상으로 너무나 훌륭한 곳이었다.
집 구경 후 테이블에 앉아 계약에 필요할 서류를 미리 보여드렸다.
여권, 워크퍼밋, 연봉 적힌 계약서, 혹시 몰라 가져 온 은행 예금 잔액 증명서까지..
저는 월세를 낼 수 있습니다 를 증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주섬주섬 열심히 종이를 들이미는 외노자들이 신뢰할만했는지
한 사람 것으로 충분히 마무리가 되었다.
집 자체만으론 흠잡을 데 없었지만
첫 뷰잉이라 당장 고! 를 할 수 없었기에 다시 메일로 의사를 전달하기로 했다.
배웅까지 친절하게 해 주신 클라라님.
더블린에 또 하나의 좋은 인상을 심어주셔서 감사해용.
첫 뷰잉을 훈훈하게 마무리하며 2차전 출발.
다트 타 볼 구실도 생기고.
날씨는 후졌지만 간만에 생산적으로 움직이니 몸은 나름 가뿐했다.
4시였던가. 2차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집 근처에서 최대한 뻐길 수 있는 카페를 찾았다.
점심 겸 죽치기 시전.
The Lovely Food Company Drumcondra · 94 Drumcondra Rd Lower, Botanic, Dublin, D09 Y43A, Ireland
★★★★☆ · Brunch restaurant
www.google.com
빈 그릇을 계속 정리하는 점원과
감자칩 하나라도 붙잡으며 떠나지 않는 우리들.
PPS number 신청도 하고 시공간을 꽤나 야무지게 썼다.
아직 시간은 남았고 갈 곳은 없었지만
눈치는 있었기에 적당히 머물고 나왔다.
두 번째 동네는 Drumcondra.
쑥쑥 솟은 가로수 길과 반듯하게 이어진 주택들,
있을 것은 다 있어 보이는 편의시설들.
그리고 갑자기 화창해진 날씨까지 더해져 동네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여기 뉴ㅓ무 살기 조켓당ㅜ
다 함께 감탄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뷰잉이 잡혔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
두 장소 간 거리가 조금 있었기 때문에
두 분이 2차전을, 내가 3차전을 맡기로 했다.
같은 중개소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안된단다. 코 쓱.
혼자 버스 태워 배웅할 때 딸램 보내는 심정 같았다고.
내래 잘 다녀오갔어 동무들.
내가 향한 곳은 Crumlin.
회사와 시내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는 마을이었다.
시내를 벗어나 주택가를 굽이굽이 지나니 아담 한적한 동네가 보인다.
버스에서 내려 또다시 집을 찾아 두리번.
모두 단독주택이라 문 앞에 표시된 번호를 잘 확인해야 한다.
주소에 적힌 번호를 가진 집이 없어 한참을 서성이니 근처 집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여기 찾고 이써요.. 말씀드리니 옆집을 가리키신다.
땡큐쏘리! 🙏
노워리스! 👋
조금 쫄리는 인상이었지만 친절한 분이셨다.
미션컴플릿을 위해 사진을 찍어대며 동네를 탐방하고 있는데
알유키딩미! 내가 여기 왔는데 맨.
진즉에 얘기해 줬음 좋았잖아 스테파니.
이땐 몰랐다.
파니와의 메일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음을.
집에 도착해 두 분의 뷰잉담을 전해 들었다.
동네에 감탄하며 기대한 것과 달리 집 내부는 다소 아쉬운 듯했다.
크기 차이가 조금 많이 나는 방들과 원인 모를 냄새..!
하지만 첫 번째 집보다 거리, 가격 면에서 우리 상황에 적합했기에 우선 계약 요청 메일을 보내두었다.
아쉽지만 클라라에게는 쏘리 문자를 드렸고
답변으로 응원의 메세지를 받았다.
계약 메일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뷰잉 찬스가 쏠쏠히 생긴다.
새로 가볼 마을은 Castleknock.
일단 멀다.
날씨도 좋고 집도 좋았다만 약간의 멀미를 유발하는 거리라 다들 큰 감흥은 없었다.
한 두 군데 둘러보니 우리의 고려사항을 다시금 짚어보는 여유가? 생긴다.
계약 메일 답장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
집으로 가는 버스가 갑자기 멈추더니 한동안 출발하지 않는다.
사고가 났던 것.
다음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보니 생각보다 큰 사고였다.
에어백이 터져있었는데 인명피해는 없길..
버스나 기차를 탈 때 창 밖을 보며 시답잖은 상상을 하곤 하는데
교통사고가 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잠깐 상상을 하며 버스를 타고 있던 중이었다.
내가 상상하면 다 일어나는 모 그런 거 아니야..?
이 얘길 하니 진님은 복권 당첨되는 상상 좀 해달란다.
나는 새 랩탑으로 m1 맥북 받는 상상을 할 거라고 했다.
저녁을 먹으려 맛집을 찾았다.
맛도리 빅데이터 엔지니어 솜님이 찾은 타이식당.
주문한 팟타이, 나시고랭, 오리고기가 나오자마자
젓가락부터 들었기에 사진은 없다.
간만에 동남아 감칠맛이 미뢰를 치고 들어와 홀린 듯이 먹어벌임.
거기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빼먹으라고 콘을 하나씩 주는데 미춰 🤦♀️
의식주의 주에서 오는 결핍을 식으로 채우는 중.
Neon Asian Street Food · 17 Camden Street Lower, Saint Kevin's, Dublin, D02 TX94, Ireland
★★★★★ · Asian restaurant
www.google.com
그리고 금요일.
좀 돌아다녔다고 한 주가 훌쩍 지났다.
다행히 주말이 되기 전 캔슬되었던 뷰잉이 다시 잡혔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어딘가 몸이 시린 날이었는데
이곳의 추위는 애송이 수준인 걸로.
중개인 스테파니의 스케줄대로 아침 아주 일찍 Crumlin을 다시 찾았다.
에이전시를 통해 컨택을 하게 되면 담당자가 스케줄을 공지해
다수의 지원자들이 동시에 뷰잉 할 수 있도록 집을 열어둔다.
이때 뷰잉할 거니 관심 있음 와라.
진, 솜님도 집을 직접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냄새나는 집보다 각 방 크기도, 집 가격도, 냄새도 훨씬 양호한 수준이라
모두의 마음이 이곳에 모였다.
하지만 나에게 좋은 것은 남에게도 좋은 것.
우리 외에도 서너 팀이 집을 찾아 경쟁심이 발동했다.
나이지리아 부부 두 분이 친절하게 인사도 건네주셨는데
이 집은 우리가 가져갔음 좋겠다.
더 멋진 곳이 있을 거에여..!
오전 열 시에 하루 일정이 끝났다.
사무실을 가볼까 어딜 갈까 고민하다 일단 시내로 가는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시내 가시는 길인지 우리도 함께 택시에 태워주셨다.
크럼린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신사 Ray.
택시 기사님도 레이와 아주 친분이 두터운 듯했다.
집 구하기 넘 어렵다ㅜ, 이 동네는 안전하냐
조잘조잘 코리아 딸램들.
레이는 예전에 아시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숙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버정에 말똥히 서 있는 우리가 반가우셨는지 먼저 말을 걸어주셨고
그때 생활했던 친구들 이야기를 신나게 해 주셨다.
시내까지 태워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곳저곳 투어도 시켜주신다.
가게마다 인사를 안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ㅋㅋ
혹시 더블린 시장 뭐 그런 분 아냐..? 생각이 들 정도.
더블린 핵인싸를 이렇게 영접하다니.
시내를 걷다가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카페도 데려가 주셨다.
Bewley’s Oriental Café
높고 탁 트인 내부에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적인 카페였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북적인다.
Bewley's Grafton Street · 78-79, Grafton Street, Dublin, D02 K033, Ireland
★★★★☆ · Restaurant
www.google.co.kr
시내에 마실 오시면 만난다는 친구 Mark도 함께 자리해 주셨다.
젊은 점원들도 레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크로와상, 아몬드봉?, 스콘과 커피를 놓고 한참 수다를 떨었다.
하숙생 이야기, 강아지 이야기, 더블린살이 등등
아 틴더로는 남자 만나지 말라는 조언까지 ㅋㅋ
젊은 나도 따라갈 수 없는 에너지와 유쾌함을 소유한 분이다 🫠
계산까지 해주시고; 몸 둘 바를 몰랐지만
꼭꼭 은혜 갚을 기회를 만들자 다짐하는 우리였다.
Stephen's shopping center에서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건 살 곳도 같이 둘러봐 주셨고
그곳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사진 한 장을 못 찍었은 게 너무 너무나 아쉽다.
블로거가 되기엔 한 참 먼 나자식.
하지만 꼭 킵 인 터치 할 인연이니!
다음 기회를 노려봐야지.
파란 하늘과 버스킹으로 멋들어진 금요일의 더블린.
멋보단 맛을 택한다.
Simon's Place · George's Street Arcade, 22 South Great George's Street, Dublin 2, D02 XD59, Ireland
★★★★★ · Coffee shop
www.google.com
하루종일 몸이 시려서 그런지 배가 채워지지 않는다.
Dunnes store에서 구운 닭 한 마리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전기장판에서 몸을 녹이며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늦은 저녁이라 별 기대 없이 메일을 확인했는데
실화냐구 🥹
입사 이후 오랜만에 보는 콩그레츄레이션 메일.
거의 시험 합격에 맞먹는 기쁨이다.
거실로 나가 두 사람에게 메일 내용을 읊어줬고
먹고자고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 계속 부담과 걱정거리였던 집이 드디어 구해졌다.
임시 숙소에서 지내는 기간에 구할 수 있어 너무너무 다행이었고
가장 감사했던 것은 셋이 모두 만족할 만한 집이었다는 것.
그것이 늘 첫 번째 기도 제목이었는데,
그래서 기쁨도 세 배가 되지 않았을까.
마침 사 둔 치킨은 파티에 더할 나위 없는 메뉴였고 🤦♀️ 예지력 강림
스테파니에게 당장 계약을 진행하겠다는 메일을 보내며
500 유로 계약금도 바로 결제했다.
집 구하면 해야지 해야지 하던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하며
우리는 이사 후 출근 전까지 맘 편히 여유를 즐길 생각에 한껏 들떴다!
어떤 일이 닥칠지 그 누구도, 아무것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