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하기
나름 시차적응을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 호르몬은 한국 시간에 맞춰 일하나 보다.
저녁을 먹자마자 잠이 쏟아지고 자정이 넘어 씻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전기장판에 몸을 지지고 일어나면 개운한 하루가 시작된다.
세탁기, 세제, 청소기 등 숙소는 장기 투숙을 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기본적인 세팅이 되어있었다.
조명 인테리어가 빨래 걸이로 사용될 줄 몰랐겠지.


22/01/2023, 이곳에서 구정을 맞이했다.
영통으로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엄마가 또 짠하게 나를 바라본다.
옆에 있는 할머니도 옮았는지 짠내 파티.
잘 먹고 다니는지 궁금해들 하시는데
미친듯이 먹고 있으니 걱정 마시길.
드렁큰 피쉬라는 한식 펍에서는 동포들을 위해 명절 때마다 특식을 제공한다.
이틀간 떡국 이벤트를 하길래 큰 기대는 없이 가봤는데
양이 어마어마하다.
떡국과 제육+소불고기 그리고 고봉밥까지 14 유로.
가성비로 웬만한 센터필드 메뉴는 후려칠 수 있을 정도.
떡국이 좀 더 따뜻했으면 좋았겠지만 무난히 맛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바싹 고기라 넘나 만족ㅜ


Drunken Fish · The Excise Building, Mayor Street Lower, North Dock, Dublin 1, Ireland
★★★★☆ · Korean restaurant
www.google.co.kr
집에 가는 길엔 처음으로 트램 Luas를 타 봤다.
대중교통으로는 Leap 카드 하나로 이층버스, Luas, 그리고 지상철 Dart를 이용할 수 있다.
타는 곳에서 태깅을 하면 2유로가 찍히고
내리는 곳에서 다시 찍으면 거리만큼 계산해 차감된다.
타고 내릴 때 안에서 급하게 카드를 꺼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편하다.
일요일 일정 떡국먹기 끝.
그리고 월요일.

밖에 나갈 구실을 만드려 바게트 맛집을 알아봤다.
빵지순례하면 일년은 그냥 지나갈 것 같다.
Bread 41 이라는 베이커리를 찾아 바게트 두 개를 구입하고
하나는 슬라이스로 부탁해 가는 길에 솜님과 야금야금 주워 먹었다.
빵 커터 머신이 없어 직접 자르면 모양이 일정하지 않을거라고 했지만
머신 수준으로 정갈하게 잘렸다.
아주 밝고 말이 빠른 점원이었다.
속은 촉촉하게 사워한 맛이 났고 겉은 바삭 고소했다.


Bread 41 · 41 Pearse St, Dublin 2, D02 H308, Ireland
★★★★★ · Bakery
www.google.co.kr
늦게 밝아진 하늘과
do nothing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우리들.
빵집 다녀올 동안 진님은 김밥을 말아두었다.
전날 솜님이 포장한 불고기도 넣고 김치 김밥도 만드셨는데 김밥천국보다 훌륭하다.
진지하게 맛있었지만 셰프는 만족하지 못했다.



나름 날씨가 괜찮아보여 다시 나갈 구실을 만들어 본다.
임시 숙소에 있는 동안 근처에 가볼 수 있는 곳은 최대한 가봐야 했기에
Phoenix Park에 소풍을 가기로 했다.
더블린의 가장 큰 공원인듯 하다.
소박하게 싼 도시락과 함께 할 커피 사기.
도시락 먹을 장소 찾는 게 소풍이지.


The Guilty Bean Cafe Dublin 8 · 36a Parkgate St, Stoneybatter, Dublin, D08 K8F1, Ireland
★★★★☆ · Cafe
www.google.co.kr
참으로 광활한 공원이었다.
나무에 잎이 필 때쯤 오면 푸릇푸릇 생기가 돌겠지.
사슴이 있다고 해서 계속 걸어봤지만 도대체 어뒤에 있다는건지.
애들이 있을 곳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걸어봤다.


진짜 있다.
많이.
경계하지만 당근에는 반응한다.




Phoenix Park · Dublin 8, Ireland
★★★★★ · Park
www.google.co.kr
날은 갑자기 어둑어둑
부슬부슬 비가 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팝콘으로 마무리하는 하루.

화요일은 특별한 일정이 있었다!
드디어 To do list 한 줄 추가.
DUB 사이트에 계신 한국팀원 분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오기 전 이것저것 많은 팁을 주셨는데 물어볼 게 아직 산더미다.
식사 제안도 먼저 해 주시고, 참 감사한 분들ㅜ
전날 한바탕 부슬부슬해서 그런지 날씨가 쨍하다.

솜님이 알아 둔 브런치 카페를 찾았다.
Powerscourt라는 큰 센터 안에 있는 The Pepper Pot.
골동품, 보석상, 비싼 소품샵이 주로 위치한 건물이었다.
1층에 팬시한 레스토랑이 보이는데 카페는 이층 복도에 자리해 있다.
살몬 베이글과 화이트 브레드 샌드위치.
세상에 맛있는 게 왜 이렇게 많을까.
너무 맛있게 하는 것도 문제라고 🤷♀️
그만 먹을 의지는 없다.



The Pepper Pot · 59 William St S, Dublin 2, D02 CH28, Ireland
★★★★☆ · Cafe
www.google.co.kr
건물을 나와 솜님은 갤러리를, 나는 그냥 시내 구경을 좀 하기로 했다.
근처에서 우리에게 무슨 중국 가게가 어딨냐고 묻는 아주머니를 마주쳤는데
일방적으로 쏘아대는 말과 침 공격에 대충 자리를 피했다.
유럽인들이 언제쯤 우릴 보고 코리아를 먼저 생각할까.
나중에 가 볼 브런치 카페 추가.
유로 동전을 넣을 전대도 하나 샀다.



한참 관광객 놀이를 하는데 가방이 살짝 당기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중동? 여자 둘이 지퍼를 슬쩍 열고 있었던 것.
이런 일이 발생하면 K 욕을 박아줘야지 다짐하고 있었는데
막상 닥친 상황에서 나오는 말이라곤
왓 알 유 두잉이 전부였다.
가방이 열려 있어서 닫아 준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엔 사태 파악이 안되어
실 쪼개며 가는 그들을 멍하니 보냈고
가방에 그나마 있던 50유로 한장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 정도면 별 일 아닌 수준이겠지만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하염없이 걷다가 발견한 위스키 뮤지엄.
20 유로정도 하길래 미련없이 나왔다.



Irish Whiskey Museum · 119 Grafton Street, Dublin, D02 E620, Ireland
★★★★★ · Museum
www.google.com
다시 하염없이 걷다가 항구가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만큼 걷기로 했다.
강가에 서서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마저 먹는데 갈매기의 시선이 느껴진다.
항구쪽으로 가다보면 현대식 건물이 많이 보인다.
익숙한 회사들도 종종 있고
아주 고층 빌딩은 딱히 없다.
치간칫솔 모양의 다리를 지날때쯤 솜님이 합류했다.


계속 직진을 하다보면 Ringsend 마을에 이르게 된다.
아담한 성당이 있는 한적한 동네였고
청량감 넘치는 잔디가 깔린 공원을 볼 수 있다.



늦은 햇살을 받은 잔디는 맑게 빛나서
신비한 기운을 뿜었다.
이것이 솜님이 얘기한 피톤치드 인건지.
우연한 발걸음에 발견하는 인상깊은 풍경은
그 때의 시간, 날씨, 기분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마을을 돌아 항구를 지나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더블린 새내기 셋과 한국팀 여섯.
총 아홉명의 인원이 중식당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인사-주문-흡입 순으로 빠르게 진행된 K 회식.
사진 찍을 시간따위 없지.
음식은 전부 모두 하나같이 다.. 너무 맛있었다.
크리스피 한 겹 두른 만두랑 무슨 나물 볶음이 생각난다. 아 모닝글로리 인듯.
아시아 맛집 더블린에 다 모였네.
Good World Chinese Restaurant · 18 South Great George's Street, Dublin 2, D02 AE10, Ireland
★★★★☆ · Cantonese restaurant
www.google.co.kr
아직 기네스는 안먹어봤다고 하니 아주 놀라시며 ㅋㅋ
바도 데려가주셨다.
본토는.. 경험해줘야지.
거품 때문이라고 했나 생맥을 두 번에 걸쳐 따르는데
음 진하고 깊다고 해야할까..
부드럽게 배를 불린다.


회사생활, 렌트 등등
더블린 외노자 삶의 산증인으로서 겪은
경험들과 조언을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살만한 곳이겠다 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내일은 드디어 첫 뷰잉을 가는 날!
사기 당하지 않을 멘탈과 차림새로 무장해보자 🥷